체육학

체육공부와 반성적 글쓰기

dream-tree89 2022. 9. 5.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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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는 삶 가운데에서 배움의 기간은 적어도 인생의 삼 분의 일에 해당한다. 물론 이보다 더 긴 교육을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주 짧은 교육을 받은 사람도 있다. 그 교육이 제도화된 교육을 통해서든 아니면 제도권 교육에서 벗어난 교육을 받든 인간의 삶은 끊임없는 배움의 연속과정이기 때문에 배움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다.

 공부는 인간의 생존을 위해서 필요한 실용적인 기술 공부가 있는가 하면 자기 삶의 교양을 쌓기 위한 교양 공부가 있다. 그것도 아니면 수학이나 영어와 같이 대학을 진학하기 위하여 문제를 풀고 정답을 맞히기 위한 공부가 있다. 이 글에서 말하는 공부는 이런 공부가 아니라 인간다움의 길에 관한 성찰을 의미하는 사람됨의 참된 공부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공부는 수학이나 영어 공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항상 공부라는 말은 우리들의 의식 속에 영어 혹은 수학 공부라는 말로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공부는 지적학습이란 의미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이런 공부에 대한 오해에서 좀 더 벗어나서 참된 공부는 자기 몸(정신과 육체가 분리되지 않는 총체적인 상태)의 성장과 성숙을 수행, 즉 사람됨의 공부에 대하여 말하려는 것이다. 사람됨이란 체육 공부뿐만 아니라 모든 공부가 지향해야 할 이상이며, 가야 할 최고의 목적지이다. 이런 차원에서 체육 공부 역시 가야 할 길은 사람됨의 공부이다. 공부는 다른 말로 수양, 수련, 도야, 수행 등이라고 불린다.

 공부라는 원뜻은 "덕을 득함을 지향하는 훈련"을 의미한다. 인간의 몸의 달인 적 경지에 대하여 광범위하게 두루 쓰이는 표현으로서 우리가 지금 "쿵푸"라는 부르는 무술이 한 형태는 쿵푸라는 일반명사의 개념에 포섭되는 광범위한 개념 중에 하위개념이다. 이 쿵푸는 오랜 시간의 축적을 통하여 고수의 몸이 얻은 덕인 것이다(김용옥, 1994 : 48-49).

 우리는 공부를 학습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공부와 학습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공부는 일종의 지혜를 추구한다면 학습은 지식을 추구하는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목적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학습은 원리를 찾는 차원에서 배우고 익히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익힌다는 것은 잘 듣고, 잘 읽고, 잘 말하고 잘 쓰기 등을 의미한다. 이 모든 것은 외우기에 의존한다. 이에 비하여 공부는 설명하기가 쉽지 않지만 다함 혹은 혼을 쏟아 부어서 무엇을 해나감을 의미한다. (임무수, 1994, 2002: 1). 이런 차원에서 운동학습은 기능의 원리를 찾는 배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글에서 말하는 체육 공부와는 구별해서 사용함이 필요하다.

 이 글의 필요성은 학교체육이 학생 선수 중심의 엘리트 체육에 중점을 둔 반쪽 공부에 머무르고 있고 경기력 향상과 이를 통해 학교의 명예를 알리는 것에 치중한 나무지 보통 학생들을 위한 체육, 학생 선수들의 인성교육은 현실에서 멀어지고 있기 때문에 학교체육의 정상화를 유도하는 데 있다. 특히 학원스포츠는 학교 교육의 테두리 안에 있으면서도 학교가 지향하는지 덕 체를 고루 갖춘 이른바 전인교육의 성취와는 관련 없이 오히려 학교 교육의 취지와는 동떨어진 깅이한 형태로 자라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실정이다(강신복, 2003: 104).

 학교체육의 정상화를 위해서, 강신복(2003)은 학교체육의 문제는 특히 학생선수의 경우가 심각한 문제로 나타나는데 자녀의 전인적 성장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며, 비교육적인 학원스포츠의 문제, 능력 만능주의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비정상적인 학교체육이 행해지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특히 천안초등학교 합숙소 화제와 같은 문제들이 발생한 것은 그동안의 학교체육의 위험이 표면화되었을 뿐이지 이와 같은 유형의 사고는 지금도 학교체육에 잠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체육 공부의 이론과 실천, 장자의 용어로 사용한다면 기의 습득과 도의 체득의 합일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현실에서 운동학습, 즉 운동기능만을 교육하고, 과잉 경쟁을 부추기고, 결과 만능주의, 승리 지상주의로 치닫고 있는 현재의 체육 공부에 문제점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체육에서 교육은 사라지고 학생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만을 강조되고 있다. 적어도 학교체육에서 개성과 독창성, 도전정신과 비판적이고 합리적인 사유 능력, 자유와 평등과 평화의 체험을 지닌 높은 도덕적 품성을 갖춘 체육인 또는 교양인을 육성하기 위해서 기능교육을 넘어서는 사람됨의 교육이 요구된다.

 이 글의 목적은 첫째, 체육 공부의 목적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문제의 해결은 장자의 공부론에서 시작된다. 장자에 의하면 공부는 실천으로 자유자재에서 찾고 있다. 성심이란 선입견을 버리고 소요, 좌만, 무대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에 공부의 목적을 두고 있다. 둘째, 체육인이라고 자부하는 우리는 체육에서 무엇을 공부한다는 것인가? 기의 습득(실기)이냐 아니면 도의 체득(이론), 그것도 아니면 기의 습득과 도의 체득의 합일인가. 셋째, 체육 공부의 방법은 무엇인가? 기와 도의 합일을 통한 사람됨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으로 반성적 차원의 글쓰기, 혹은 인문학적 글쓰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세 가지 문제에 대한 과제를 해결하는 데 있다.

 이 글의 연구 방법은 아무래도 우리가 사는 이 땅의 사상 중심을 형성하는 동양고전(노장철학)의 문헌에 나타난 공부론을 바탕으로 체육 공부를 재해석하는 해석학적 방법을 사용하였다. 방법론적 절차는 공부의 일반이론에 대하여 검토하고, 체육 공부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장자가 말하는 기의 습득과 도의 체득과의 관계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그다음으로 체육 공부의 방법으로서 반성적 글쓰기에 대하여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하고, 마무리는 전체의 요약과 향후의 과제를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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