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학

수행과 체육학 글쓰기

dream-tree89 2022. 9. 11.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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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체육 논리 및 논술이 체육교육과 또는 체육 계열 학과 교과과정으로 개설되면서 글쓰기에 대하여 많은 관심들을 보여주고 있다. 다른 분야에도 역시 교과 논리 및 논술 과목이 개설되어 있다. 체육학 글쓰기는 다른 교과와 어떤 성격에서 차이를 드러내고, 그 차이를 부각하기 위하여 글쓰기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높다. 차이를 발견하고 활용할 수 없다면 체육 논리 및 논술은 일반적 글쓰기와 차이가 없다. 차이는 문제 대상이 체육이라는 것뿐이다. 체육과 다른 분야에서 행하는 글쓰기의 차이는 무엇인가. 분명히 체육은 신체활동이라는 체험 현상이 존재하기 때문에 몸으로 배우는 공부로서 다른 교과와 차이점이 있다.

이 체험을 가지고 글쓰기와 연결할 수 있다면, 체육학 글쓰기는 독창성을 가질 수 있다.

 체육학에서 글쓰기는 과제나 시험문제 풀이를 하는 데 필요한 것인가 혹은 그 이상의 쓰임이 없는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그것도 아니면 대학원에 진학하여 만나게 되는 체육학 연구법과 논문작성법의 하나로써 연구논문을 위한 학술적 글쓰기를 생각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체육학 글쓰기의 전부라고 할 수 있을까? 과연 체육학 글쓰기를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기존의 글쓰기와 체육학 글쓰기는 어떻게 다른가. 그 다른 것은 어떤 쓰임이 있는가를 밝힐 수 있다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이다.

 체육학 글쓰기의 효용으로 소통 능력을 강화하고 표현능력과 논리력 향상을 말한다. 이 외에는 설득력을 강화할 수 있는 효과로 '수행으로써 체육학 글쓰기'를 말하려고 하는 것이다. 체육이나 무도를 하는 사람들은 일종의 시내를 통해서 고통을 체험하고 그 과정을 극복하는 수행의 과정을 만나게 된다. 그 수행은 운동과 글쓰기를 통해서 자아를 발견하게 된다.

 운동하는 과정에서 체험하게 되는 신체의 고통은 크다. 그 고통 때문에 때로는 운동을 포기하는 선수들과 사람들이 생겨나 난다. 마라톤 선수가 혼자 외롭게 42,195 km 달리는 고통은 엄청나다. 물론 '러너 하이'라는 절정체험이 존재하지만 즐거움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고통과 싸운다는 것은 일종의 자기 극복 과정이며 깨달음의 과정이다.

깨달음은 종교인의 경우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선수와 일반인 모두에게 해당한다. 성숙을 향한 깨달음은 정신적 성숙뿐만 아니라 신체적 수행을 통한 깨달음을 통해서도 얻게 된다. 그 깨달음은 신체활동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성적 행위로서 글쓰기를 통해서 한층 강화될 수 있다.

 이 글의 목적은 일반적인 글쓰기의 효과를 검토하고 '수행으로써 체육학 글쓰기'를 알아보는 데 있다. 물론 글쓰기 수행은 서홍렬(2009)의 생각에 의존하고 있다. 그는 "글쓰기가 또 하나의 수행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수행으로써 글쓰기가 어떻게 체육학 글쓰기에서 활용되고 체육학 글쓰기의 새로운 효과라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글쓰기 효과를 검토해 보고 이것들과 차별화 할 수 있는 글쓰기로 '수행으로써 체육학 글쓰기'에 대하여 알아본다. 방법으로는 기존의 글쓰기 관련 서적 및 논문과 체육학 분야에서 연구된 선해 연구를 검토하여 글쓰기의 효과를 확인하였고, 다음으로 수행으로써 체육학 글쓰기에 대하여 탐구하였다.



수행과 글쓰기 



 수행의 목적은 득도이다. 도를 얻는 것, 그런데 도를 얻는 것은 다른 말이 아니라 나를 찾는 길이다. 도의 내용은 참된 자기 모습이고, 얻는다는 것은 그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참된 자신의 모습을 보는 일이 바로 도를 깨우치는 일이다. 도를 깨우치기 위해서는 도를 닦아야만 한다. 그래서 수행을 수도라고도 부르는 것이다. 이렇듯 수행은 손쉽게 행해지지 못하는 일로서, 선택된 혹슨 선택한 소수의 사람에게만 적용되던 표현이요, 용어이다. 수행이란 그만큼 보통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최의 창, 2010 : 127).

 수행은 우리말로 하면 몸 닦기라고 할 수 있다. 몸을 닦는 것은 목욕탕에서 때를 닦는 행위이다. 몸을 닦는 행위는 몸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마음과 연결되어 있기에 궁극적으로 인성을 함양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동양에서 몸과 마음은 하나라는 심신 일여의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몸을 닦아서 마음을 높이는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인간이 지향하는 것은 인격이라는 인성을 함양하는 것이다. 이 지상의 다른 피조물과 인간이 차이를 가지는 것은 인성이라는 부분이다. 인간은 자아 초월성이라는 자기를 객관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에 자아를 닦아서 인성을 도야할 수 있는 것이다.

 운동 자체를 통해서 수행이 가능하다는 최의창(2010)의 주장이 있다. 그는 "현대 생활 속에서 자기를 찾기 위하여 할 수 있는 자기 수련의 활동으로서 운동은 최적격이라고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 가능 근거는 운동하면서 마음 자세를 잡는 것에서 찾고 있다. 그래서 그는 "신체의 수련과 정신의 수양을 통하여 영혼의 수행이 이루어짐으로써 자아의 발견이 완성될 수 있으며 이것이 자기 수행으로써 운동수행이다."라고 강조한다. 이 같은 주장은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따라서 저자는 운동수행과 병행해서 운동 이후의 글쓰기에서 수행의 가능성을 찾고자 하였다. 운동 그 자체도 수행이  마음공부라고 할 수 있는 성찰이 가능한 글쓰기에서 수행의 가능성을 엿보는 것이다. 분명 글쓰기와 운동은 수행과 관련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외에도 글쓰기는 여러 효과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논리력과 표현력이다.

 글쓰기의 효과로 말해지는 것들은 논리력과 표현력의 향상이다. 이외에 다양한 효과를 제시하고 있지만 앞의 효과에 대한 부연 설명이라고 보면 된다. 최근에는 소통 능력 향상이라는 효과를 내세운다. 어떻게 보면 소통 능력 역시 표현력의 확장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 생각을 글로써 잘 들어낼 수 있다면 상대와 오해 없이 소통을 빠르게 진행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소통 능력 역시 일종의 표현력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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