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학

수행으로써 체육학 글쓰기

dream-tree89 2022. 9. 13.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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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학의 참된 글쓰기는 서사적 글쓰기를 통한 사람됨에 목적이 있다. 사람됨은 모든 공부의 목적이다. 수행으로써 체육학 글쓰기 역시 마음의 성숙에 도달하려고 하는 것은 사람됨과 일치한다. 창조적 글쓰기는 수행의 과정이다. 고통을 창조 작업으로 승화시켜 가는 수행으로 글쓰기는 하나의 수행 방법이 될 수 있다. 글쓰기를 통하여 수도자가 성취하는 깨달음이나 자기성찰 또는 자아 발견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수행으로써의 글쓰기가 강조되는 이유이다(소홍렬, 2009). 수행으로써 체육학 글쓰기의 효과는 고통의 창조적 승화, 자아의 발견, 마음의 성숙에서 찾아보았다,



고통의 창조적 승화



우리가 불행하다는 것은 고통의 순간이 쾌락의 순간보다 더 자주 만나기 때문이다. "고통은 괴로움과 아픔의 의미를 함축한다. 일반적으로 괴로움은 정신적 차원의 고통을 뜻하고, 아픔은 신체적 통증을 고통은 이 두 가지 차원을 모두 포함한다"(강영욱, 2007: 63). 행복한 것은 쾌락의 시간이 더 많이 접한다는 것이다. 누구나 고통보다는 쾌락을 추구하게 된다. 쾌락이라는 말이 쾌락 및 성애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에 재미의 추구로 바꿔 말하여 표현하게 된다면 고통은 창조적으로 승화될 수 있다. 모든 문화나 창조물은 고통의 산물이다. 수준 높은 스포츠 기술은 수많은 고통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도달할 수 있는 단계이다. 고통에 좌절하게 되면 접근할 수 없는 것이 신체의 탁월성으로 대변되는 단계이다. 고통이 고통으로 끝나게 되면 아무런 의미를 찾지 못한다.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고통을 창조적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운동선수 혹은 운동을 하는 사람에게 넘어서야 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고통의 순간이다. 일종의 사점(dead point, 죽을 것 같은 고통스러운 순간)이라고 하는 죽음의 순간을 넘어서야 운동하기 좋은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고통의 순간은 피할 수 없는 것이 운동하는 과정이다. 고통을 극복하지 못하면 다음 고통으로 인한 부담감을 가질 수 있다. 고통은 완성된 동작을 향하는 과정이라는 인식과 고통을 넘어서려는 의지가 함께한다. 순간의 고통의 단계를 넘어서지 않고 발전은 없다. 꾸준한 연습과 노력하는 과정에서 고통을 극복하고 한 단계 성숙한 과정으로 나갈 수 있다.

 고통은 인내력을 요구한다. 고통 없이 얻어지는 일은 소중하지 않다. 모든 것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고통의 순간을 익어서 자기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가질 수 있다. 지구력 스포츠(endurance sport)는 바로 인간의 가장 힘든 고통스러운 순간을 극복하고 자신의 의지에 따라서 행동하게 한다. 고통은 항상 나쁜 것이라고 하기보다는 자신을 단련하는 최고의 기회라는 인식이 필요하며 그 기회를 살릴 수 있다면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고통을 즐길 수 있다면 무엇인가 성취하는 것이 있다. 고통 때문에 좌절하고 중도에 포기하게 되면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고통의 창조적 승화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 수행으로써 체육학 글쓰기가 요구된다.



자아의 발견



나는 누구인가. 인간은 누구인가. 참더니 자아를 발견하는 것은 쉽지만은 않다.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928)에 의하면, 인간은 세인(DAS Man)으로 고독하고 고통스러운 자아는 홀로된다는 것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죽을 수밖에 없다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순간을 모면하기 위하여 자극적인 쾌락에 빠진다. 그래서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고, 술을 마시고, 잡담하게 된다. 그러면 죽음과 외로움의 고통에서 일시적으로 벗어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언제나 혼자 남아야 하는 시간과 만나게 된다. 그래서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하게 되며 인간에 대한 생각, 삶과 죽음, 이성, 종교, 신 등 모든 것에 대하여 의심을 가지고 심각하게 고민에 빠지게 된다.

 운동하는 과정에서 고통과 싸우게 된다. 그 싸움에서 참더니 자아를 만나게 되고 그동안 망각하고 있던 자아를 발견하게 된다. 이때 만난 자아는 글쓰기를 통하여 확인되고 자신이 가야 할 길에 대하여 고민하게 된다. 그 고민을 글쓰기와 함께하여 진정한 자아와 만날 수 있다. 이때는 철저히 혼자되고 할 자화 된 글 속에서 만나게 된다. 과장되지 않고 진정성이 담긴 일기와 같이 내면의 소리를 적어낼 수 있다면 쉽게 자아와 접할 수 있다. 이 점은 바로 수행으로써 체류한 글쓰기를 통해서 얻어 낼 수 있는 장점이다.

 글쓰기는 생각을 정리하게 하고 창의적 생각을 가능하게 한다. 이보다 더 큰 효과는 자아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운동하는 나는 누구인가를 찾을 수 있는 참 나를 발견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만들어질 수 있다. 신체 훈련의 어려운 고통 과정에서 강인한 정신력뿐만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를 분명하게 인식하여 참된 나를 찾아갈 수 있다. 참된 나는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과 글쓰기를 통해서 다가갈 수 있는 부분이다. 형식적 자아 혹은 사회적 자아는 참된 자아이기보다는 주변의 기대에서 형성된 자아라고 할 수 있다. 주변의 시선에 의식하지 말고 자신의 소신을 가지며 자아를 찾는 작업을 해야 한다. 그 작업은 운동 후에 할 수 있는 수행으로써 체육학 글쓰기로 역경 가운데 참된 자신과의 만남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이 시간을 통해서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게 된다.



마음의 성숙



마음의 성숙은 자아 초월성이라는 능력을 갖춘 인간들이 이성의 반성적 사유 능력을 통해서 가능한 부분이다. 자아를 초월하여 자아를 객관화하여 바라볼 수 있으며 그 과정을 통해서 잘못된 행위를 반성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반성적 차원으로서 글쓰기는 분명 마음의 성숙을 가져다준다고 할 수 있다. 마음의 성숙은 단순한 지식 공부를 통해서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성찰 공부를 통해서 얻어야 하는 부분이다. 이 부분은 반성적 차원의 글쓰기 혹은 서사적 글쓰기를 통해서 훈련하고 향상할 수 있다. 몸으로 배우는 체육 공부는 타자에 대한 자신의 행위, 도덕적 차원에서의 행위, 경기 간의 행위 등 다양한 체험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느끼게 되는 것들은 수행으로써 체육학 글쓰기를 통해서 정리되면서 깨달음의 길에 이르게 된다.

 격렬한 신체 훈련은 폭력성과 연결될 수 있다. 선수가 정상적인 방법으로 폭력성을 정화하지 못할 경우 사회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 가지 예로 전 해태 타이거즈 이호성은 2008년 3월 '4 모녀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경찰의 추적을 받다 한강에 투신자살했고, 2011년 6월에는 한화 이글스에서 뛰던 최진호는 뺑소니 치사사건을 저질렀다. 그리고 2012년 5월 26일 전 축구 국가대표 김동현은 부채를 갚기 위해 부녀자를 납치해 돈을 갈취하려다 구속됐다(아시아투데이, 2012년 5월 30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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